여름이면 으레 찾게 되는 공포영화. 그중에서도 단순한 놀람을 넘어서 깊은 불안감과 잔상을 남기는 영화가 있다. 바로 나홍진 감독의 ‘곡성’이다. 귀신, 종교, 민간신앙이 복잡하게 얽힌 이 영화는 관객의 심리를 흔드는 공포를 선사하며, 한국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1. 곡성: 단순한 공포가 아닌 본능적 불안
‘곡성’은 2016년 개봉 당시부터 충격과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영화는 단순히 깜짝 놀라는 장면 위주의 공포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두려움과 불안, 의심과 믿음을 다루는 심리적 공포가 중심이다. 영화는 시골 마을 곡성에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과 괴이한 병의 근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보는 이의 숨을 조이듯 긴장감을 조성한다. 특히 경찰 종구(곽도원)가 사건을 수사하면서 점점 더 혼란에 빠지는 심리 변화는 관객과 함께 흘러간다. 무당, 귀신, 외지인 등 초자연적인 요소들이 얽히면서 영화는 점점 불길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일본인(쿠니무라 준)의 존재는 설명되지 않는 불쾌감과 불안을 자아낸다. 무서움은 단순한 괴성이나 핏물에서 오지 않는다. ‘곡성’이 무서운 이유는 보는 이로 하여금 "내가 믿는 것이 진짜일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종교적 신념, 공동체 불신, 외지인에 대한 공포 등 한국 사회가 가진 무의식적인 공포를 예리하게 파고든다. 여름밤, 식은땀을 흘리게 할 만큼 서늘한 공포는 ‘곡성’이 가진 가장 큰 무기다.
2. 공포: 장르를 뛰어넘는 복합적 연출
‘곡성’은 공포영화라는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다. 수사극, 오컬트, 미스터리, 종교 드라마가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있으며, 각 장르적 요소가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감독 나홍진은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들면서도 몰입시키는 탁월한 연출력을 보여준다. 영화의 공포감은 단지 내용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소리, 색감, 장면 전환 등 시청각적 요소들이 기묘하게 엮여 있어, 관객은 스크린 앞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는다. 특히 무당 일광(황정민)의 굿 장면은 긴장과 광기를 극대화시킨 명장면으로 꼽히며, 보는 이로 하여금 전율을 느끼게 만든다. 또한 시골 마을의 배경 자체가 공포의 한 축을 담당한다. 한적하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어딘가 음산한 자연 풍경과 조용한 마을 사람들의 표정, 알 수 없는 병증들은 관객에게 익숙한 한국적 배경 속에서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곡성’은 유혈 낭자하거나 끔찍한 장면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관객의 심장을 죄는 느낌을 준다. 그것이 바로 이 영화가 공포 장르의 클리셰를 탈피한 독창적 작품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3. 긴장감: 의심과 혼란 속에 사로잡히다
‘곡성’은 영화 내내 끝없는 긴장감을 유지한다. 한순간도 편하게 숨을 쉴 수 없는 구조다. 이는 이야기 자체가 선과 악, 진실과 거짓, 믿음과 배신 사이를 계속해서 오가기 때문이다. 관객은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어느 쪽이 진짜 악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외지인이 악의 존재인지, 무당 일광이 진짜 신령을 모시는지, 아니면 효진이 그저 병에 걸린 것인지 등 영화는 단서를 주는 듯하면서도 혼란을 가중시킨다. 이러한 전개 방식은 단순한 스토리 소비를 거부하고 관객 스스로 해석하도록 만든다. 나홍진 감독은 명확한 결론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불편한 질문과 미묘한 암시들만 남긴다. 그래서 ‘곡성’은 한번 보고 끝나는 영화가 아니다. 본 사람들끼리 해석을 나누고, 다시 보면서 의미를 곱씹게 만드는 독특한 힘이 있다. 음향도 긴장감을 조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갑작스러운 정적, 낯선 울음소리, 강렬한 북소리 등은 단순한 음향 효과가 아니라, 영화 내내 공기처럼 존재하며 불안을 증폭시킨다. ‘곡성’의 긴장감은 공포와는 다른 결이다. 그것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직감에서 오는 두려움이며, 바로 그 점에서 이 영화는 여름에 꼭 봐야 할 대표 무서운 영화로 손꼽힌다.
‘곡성’은 단순히 무서운 장면을 나열한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인간 내면의 불안, 신념, 사회적 공포를 복합적으로 엮어내며 긴장과 두려움을 만들어낸다. 한국적 배경과 정서를 활용하면서도 보편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곡성’은 여름에 다시 봐야 할 한국 공포영화의 정수라 할 수 있다.